책소개
"죽여라!" "모조리 베어라!" 한 떼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점령했다. 한결같 이 칠흑 같은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고, 턱만 보이는 방갓을 내려쓰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병기도 제각각이었다. "무인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흩어졌지 만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 아래 온전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욕관(嘉 關)을 넘어온 흉노족(匈 奴族)의 무인이거나 위구르족의 군사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감주부로 난입해 살인을 저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쿠아아아!" "컥!" 한적하던 관도에는 비명이 울리고 붉은 피가 허공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올랐다. 푸하하하하― 붉은 피가 허공으로 뿌려지며 무지개가 피어 올랐다. 그들은 미친 듯 사람에게 달려들며 닥치는 대로 베고 쓰러뜨렸다. 평화롭기만 하던 감주부는 한 순간에 유 혈이 낭자한 도살장(屠殺場)으로 변해 갔다. "산단산장주(山丹山莊主)에게 알려라." 골목 곡목으로 도주를 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소 리를 질렀다. 감주부의 외곽에는 감숙에서 위용을 날 리기 시작한 산단산장(山丹山莊)이 포진하고 있었고 그들이라면 능히 무인들을 제압하리라 생각했던 모양 이었다. "모두 죽여라." 이십 명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 사람은 한낱 미물(微物)과도 같이 여겨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관도에는 백여 명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시 체에서 흘러 나온 피가 관도를 붉게 물들였고 바람에 날리던 먼지는 가라앉았다. "미친놈들을 막아라!" "어서 죽여라." 공동파( 派)와 종남파(終南派)의 제자들로 보이는 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상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 다. 이들은 흐르는 피와 잘려진 수급의 숫자를 보탤 뿐이었다. 한동안 만행을 자행하던 무인들은 갑자기 관도의 중앙 에 모였다. 지속되던 살육도 멈추어졌다. 이미 사람들 은 골목과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였다. 살육을 저지르던 무인들 틈바구니에서 거칠고 탁한 목 소리가 울렸다. "산단산장주에게 알려라." 산단산장은 십칠 년 전 감주부 부근 흑하(黑河)와 산 단목마장(山丹牧馬場) 사이에 장원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낸 신흥방파(新興邦派)였다. 그들은 한 순간에 감숙을 아우를 정도로 강대해져 공 동과 종남파와 어깨를 겨루고 있었다.
저자소개 - 종린
강원도 사람으로, 산과 물을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주요작품으로는 <소림철불><추경록><사풍반사생><도광사><혁철무한><부도원행유><청성본기> 외 다수가 있다.